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기타 == 베트남 정부나 국민들이 한국에 별 감정 없다는 서술들이 많은데, 피해주장자 등에서는 강한 비판 의식을 지닌 경우가 많으며 한국의 진보 단체나 [[한겨레]], [[오마이뉴스]] 같은 진보쪽 언론들이 연계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현 베트남 정권은 오히려 이들을 탄압하는 형편인데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에 의해서 민간인 학살이 정말로 있었는지 아닌지를 파다보면 결국 자신들(당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 의한 학살들([[후에 대학살]] 등)이 만천하에 드러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 공산당 입장에서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학살이나 전쟁범죄에 대한 보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전쟁 특성상 전방과 후방이 따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베트남 내에 베트콩들의 전쟁범죄에 당한 민간인 피해자들이 남베트남 북베트남 할 것 없이 너무 많고 이런 것들이 다 드러나면 공산당 정권 존립 자체에 위험이 될 뿐만 아니라 이 피해자들을 전부 보상해준다면 베트남 정부가 파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월남전 당시 베트콩은 남베트남에 협조하는 민간인들을 가차없이 살육하기로 유명했다. 그때문에 한국의 중대전술기지나 미국의 전략촌에는 남베트남 원주민뿐 아니라 베트콩을 피해 도망온 북베트남쪽 난민도 적지 않았고, 이들이 기지 밖으로 멀리 나가지만 않으면 훨씬 안전했기 때문에 철군 이전까진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75년 이후에 이들이 어떻게 됐을지는 뻔하다. 이들의 사례가 발굴되면 정치적 피해를 보는건 베트콩의 후신인 베트남 공산당이다. 남베트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당시 북베트남이 우리를 점령했을 때 우리한테 한 짓은 말하지 않고 한국이나 미국의 학살만 들먹이냐?"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적화통일 당시 피해를 본 사람들이나 그들의 후손들. 게다가 이 논란을 낳은 글은 베트남의 어떤 기자가 "만일 한국이나 중국에서 일본군을 관련한 드라마가 방영되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으나 위에 서술했듯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 글을 쓴 쩐꽝티 기자는 하노이 출신, 즉 북베트남 출신이라 남베트남 출신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통 영미권 국가들과 조금이라도 관계된 항목들은 당사국보다 영어로 작성된 항목이 가장 상세한 경우가 많으며 [[위키백과]]에서 해당 문서들은 일본어버전이 제일 자세하고, 역시나 내용도 과장되거나 한국군의 잔혹성을 부각하는 것이 많다. 물론 [[난징 대학살]] 같은 구 [[일본군]]의 전쟁범죄 관련 문서와는 완전한 정반대 태도. 개막장 극우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정신줄을 놓은 일본 위키백과의 슬픈 현실이다. 인터넷 인구수 기준 한국에서는 위키백과에 관심이 적은 반면, 일본 위키백과는 특히 근현대역사나 정치 관련 항목은 굉장히 우익적이고 자세하다. 사특정 사건에 직접 연관되어 있는 국가들은 위키백과에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 싶다면 특정 사건이 왜곡된다고 해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중립적인 국가의 위키에 들어가서 구글번역기를 정성들여 돌리는게 좋다. 더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 싶다면 위키보다는 여러 책이나 심도있는 기사를 비교 대조하면서 살펴보는 것이 좋다.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제정된 법이 그 유명한 '''군인에 대한 이중보상 금지 조항'''이다. 정확히는 군무원과 경찰도 해당되며 직무 중 죽거나 다쳐도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고 법정보상금만 받을 수 있다는 제도. 이 조항이 만들어진 경위는 박정희 정권이 당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던 한국전쟁 상이용사에 대한 보상 제도를 정비하면서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국가에 대한 민사소송이나 이중배상을 막아 정해진 액수만 받게하려는 취지였다. 당시 유공자나 상이군인(특히 [[한국전쟁]] 상이용사와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2,000만원 가량의 돈을 연금형태로 지급하도록 제정했는데, 당시 [[서울]]의 [[아파트]] 1채의 가격이 1,000 ~ 2,00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엔 악법이 아니었으나 '''40년간 물가가 백배가까이 오를동안 보상금 액수가 동결되어 있었다.''' [[제1연평해전]],[[제2연평해전]] 때에는 이미 물가가 50배가량 오른 시점이라 보상금의 액수가 터무니 없이 적었다. 그렇기에 헌법이 개정되는 중에서 끊임없이 폐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존치되어 내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에서 이 법을 우회해서 보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전쟁 이후 사회적으로 유행어가 한국군을 중심으로 한동안 돌았는데, 바로 '짜웅'이라는 말로 아부하는 행위를 일컫는 속어다. 원래는 '짜오 옹'이라고 하는 직역하면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쯤 되는 [[베트남어]]가 변형된 것이다. 당시 [[남베트남]]의 부정부패가 심해서 로비할 때 로비하는 사람이 고관에게 예의갖춰 인사한 것이 와전되어서 한국에서의 '짜웅'에 이른것.[[https://blog.daum.net/temapark/16507918|#]]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한 [[한류]] 열풍이 강한 곳 중 하나인 곳이 [[베트남]]이다. 그런데 2016년 인기 드라마인 [[태양의 후예]] 방영을 앞두고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Yetvtde76BM|논란이 벌어졌다.]] 다행히 <태양의 후예>는 베트남 국영방송국인 HTV2채널에서 Hậu duệ mặt trời(태양의 후예)라는 이름으로 별 문제 없이 방영되었으며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국내 마지막 방송이 4월 14일이었는데 베트남에서는 겨우 1주일 뒤인 2016년 4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했고, 이는 30개국 이상 수출된 이 드라마가 해외 방송국에서 가장 먼저 방송된 것이다. 다만, 외국의 방송국에서 정식 수입 방영을 하기 전에 이미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 뷰(VIU)와 KBS WORLD, 유튜브등을 통해서 본 외국 사람들도 많았다. 이 드라마의 OST는 베트남에서 25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특히 태양의 후예를 패러디한 코미디 프로도 방송되는 등 [[https://www.youtube.com/watch?v=ckgeq7IfYUUI|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연 베트남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부정적이었을지 의문이다. 1998년 11월 23일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파월했던 백마부대와 십자성부대편이 방송탔었다. [[https://youtu.be/d5techAFOss|#]] 오프닝에서 MC들은 충성을 외친걸 봐서 경례 구호가 충성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